기업재산의 사회환원
생업자금의 지급은 빈곤추방을 통한 청소년의 범죄예방과, 자립자주정신 확립으로 인격적 성공을 기하려고 하는 순수한 인간애로서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생업자금 지원은 물질적 원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사랑의 마음주기 운동인 것이다. 생업자금은 연중 월별로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에게 지급되었으며, 강석진 회장의 이타적 정신은 부산의 향토사회에서 크게 모범이 되어 지금도 그 사실을 기억하는 부로(父老)에 의해 회자되고 있다.
강석진 회장의 사회사업에 대한 그의 사고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은 생업자금을 지급하면서 행한 연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온 국민이 자조 자립 협동하는 새마을 정신으로 힘을 뭉쳐 알찬 생활의 터전을 닦고 있는 이때 여러분들도 오늘에 주어진 환경이 어렵고 생활이 고달프더라도 견디며 인내와 용기와 힘찬 생활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
강석진 회장은 그가 지급하는 생업자금이 그냥 쓰라고 주는 돈이 아니고 현재의 곤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강석진 회장의 진정한 바램은 우리 청소년들의 올바른 교육과 선도였으며, 마침내 미래의 산업 역군을 길러내는 육영사업을 직접 실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육영사업과 청소년 선도운동을 일생의 책무로 결심하여 1977년 4월 11일 그는 '학교법인 동명문화학원' 설립허가를 받아 내었다.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정신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준비를 하였다. 동원공업고등학교 설립계획을 승인받고 국가의 장래는 청소년의 올바른 교육에 달려 있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아낌없이 학교설립에 물심양면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 결과 동원공업고등학교(현재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이후 전문대학 설립계획 승인을 받아 교사를 신축하고 한국의 미래를 향한 고급 인력을 양성할 육영사업에 노년의 열정을 쏟았다. 강석진 회장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육영사업에 투자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는 기업가의 재산은 사회의 발전적 기금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후세의 교육에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할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사회사업을 위한 그의 정열과 관심은 역시 공익사업인 학교설립 사업에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부산항만물류고등학교와 동명대학, 그리고 동명대학교라는 향토 부산의 교육적 요람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